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 Claire keegan 클레어 키건
.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1.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키건> 감상 review
책을 읽어나가는 주된 추진력 중 하나는 등장인물에게 느끼는 동질감이다. 나와 비슷한 이가 선택할 다음 행동을 초조하게,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펄롱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지금의 행복이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한 번 발을 잘 못 딛는 것만으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 펄롱의 일상을 지배하는 주된 감정 중 하나는 그러한 지속적인 불안이었고 내가 너무나 잘 아는 감정이었다.
이야기는 1985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차갑고 침울한 날씨로 시작한다.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난 펄롱은 엄마가 일하는 곳의 주인이었던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그녀의 집에서 엄마와 미시즈 윌슨, 그리고 농장 일꾼 네드와 함께 자랐고, 아일린과 결혼 후에는 딸 다섯을 두고 석탄, 목재상을 운영하며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부족하지 않게 가정을 꾸리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저마다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을 선물을 고르고 기다리는 날들 중 펄롱은 작은 사건과 마주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의 사소한 것들은 무엇일까? 사소하지 않기에 사소하다 붙였을 이 제목은 우리가 마주치는 사소한 사건들, 선택하게 된 사소한 결정들, 마음먹어야 할 사소한 결심들. 그러니까 결국 사소하지 않을 모든 것들이다. 펄롱의 선택과 결심처럼. 그리고 어쩌면 거대한 권력에 맞선 사소한 개인들.
나는 가끔 김수영의 시를 생각한다. 김수영 시인이야 말로 사소한 것들의 위대함도, 또 사소한 일상의 지리함과 하찮음도 가장 잘 안 사람이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펄롱은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바꿀 한 걸음을 딛는다. 어쩌면 자신의 아이들의 인생마저 바꿀 손을 내민다. 그 사소한 일은 사소하게 사라져 버릴 수도, 혹은 거대한 강물이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인간적 연민의 차원에서 보자면 그는 한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사소한'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베푼다.
2.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인상 깊은 문장들
다시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펄롱은 네드가 오래전 크리스마스에 선물해 주었던 보온 물주머니를 생각했다. 그 선물을 받고 실망하긴 했으나 그것 덕분에 밤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따스함을 느꼈다. -p37-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p44-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던 -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p120-
3. <이처럼 사소한 것들> 영화 개봉 예정 및 실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은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아일랜드에서 있었던 수녀원의 인권유린 사건,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22년부터 문을 닫은 1996년까지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종교시설에서 여성들은 무임금으로 착취해 왔다. 여성들 중에는 매춘부, 미혼모들도 있었으며, 성폭력 피해자와 고아소녀도 있었다. 수녀원은 이들이 낳은 아이를 돈을 받고 입양을 주선했으며, 이렇게 아이를 빼앗긴 여자들이 1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은 킬리언 머피 주연으로 24년 영화로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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